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래리 레인즈 (문단 편집) === 사생활 논란, 편지 및 서류 조작 사건 === 1961년 시즌이 끝나고 11월 말 경, 미국에서 '''에드 서버스타인''' 이란 인물이 쓴 편지가 항공 우편으로 한큐 구단 사무소에 도착하였다. 내용인 즉슨 "수년 전 귀 구단에서 활동했던 래리 레인즈가 다시 한번 한큐에서 뛰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레인즈는 현재 마이너리그에서 탑 클래스의 성적을 올리고 있으며 예전 일본 시절보다 실력이 더 늘었고 경험도 풍부해졌다. 레인즈의 복귀에 대해 귀 구단의 최대한 빠른 답변을 바란다"는 요지였다. 당시 한큐 구단대표(단장) 오카노 타스쿠는 이 편지 내용을 곧이 받아들이지 않고 "레인즈가 실제로 마이너리그에서 거둔 상세 성적 데이터도 없고, 무엇보다 그가 우리 팀에서 활약했던 건 7년 전 일인데..." 라며 신중하게 접근하려 했지만, 감독이던 '''도쿠라 카츠키'''[* 사회인야구 등에서 뛰다가 무려 '''35세(!)'''의 나이로 1950년 [[양대리그]] 발족과 동시에 신설된 [[마이니치 오리온즈]]에 입단하면서 프로에 데뷔, 그 해 [[퍼시픽 리그]] 최초 [[홈런]] 기록을 차지하는 등 맹활약하며 [[20-20 클럽|21홈런 22도루]] 96타점을 기록하여 오리온즈의 원년 [[퍼시픽리그]],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그후 1951년 [[한큐 브레이브스]]로 이적해 [[베스트나인]] 2회 수상 등의 활약을 보이며 중심타자로 꾸준히 뛰다가 1958년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이후 코치로 전임했다가 1959년 시즌 도중 감독인 [[후지모토 사다요시]]가 성적부진으로 도중사임하며 [[감독대행]]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1962년까지 한큐의 감독직을 맡았다. 하지만 그도 역시 성적부진에 시달리며 결국 우승 경력 없이 한큐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1967년 데뷔팀이었던 오리온즈의 감독으로 복귀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시즌 도중 해임되었다. 이후 해설자 등으로 일하다가 1997년 향년 82세로 사망했다.]는 전력 보강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내세우며'"레인즈라면 우리가 잘 아는 선수 아니냐. 전혀 모르는 선수 보다는 계산이 선다" 라면서 레인즈의 재영입을 강하게 주장했다. 결국 한큐는 도쿠라 감독의 의견을 수용하여 레인즈를 입단 시키기로 결정하고 레인즈에게 일본으로 속히 들어오라는 [[전보]]를 쳤다. 레인즈는 "(1962년)2월 말 캠프 때 까지 일본에 돌아오겠다" 라는 답변을 보냈지만 그 후 연락이 두절되었고, 레인즈의 이적을 허가하는 [[MLB]] 커미셔너 사무국의 서류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정규시즌 개막 직전인 1962년 4월이 되어서야 레인즈는 MLB 사무국의 서류를 들고 일본에 입국하여 간신히 한큐와 입단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10일 정도의 조정 기간을 거쳐 1군에 등록된 레인즈는 변함없는 활약으로 지난 해 5위에 그친 한큐를 시즌 중반까지 2~3위권으로 끌어올리는 데 한 몫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맹활약이 레인즈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으니, 그가 한큐에서 부활했다는 소식을 미국 현지 신문에서 기사화하는 와중에 레인즈에 관한 여러가지 문제가 표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레인즈는 5년 전 이혼한 본처에게 [[위자료]]와 아이의 양육비를 전혀 지불하지 않았고, 레인즈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본처는 레인즈의 5년 치 미지불 위자료 및 양육비 청구서를 한큐 구단 앞으로 보내오는 바람에 구단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더군다나 레인즈는 한큐 재입단 시에 "해결할 문제가 있어 돈이 필요하다"며 구단 측에 지원을 요청했고, 구단은 2천달러(당시 [[일본 엔|엔화]]로 72만엔 정도)를 레인즈에게 주었지만 레인즈는 다른 목적으로 그 돈을 써버렸다는 사실도 발각되었다. 한술 더 떠 '''한큐 입단에 필요한 MLB 사무국 서류와 전년도 말 에드 서버스타인 이라는 에이전트 명의로 보내온 편지 또한 레인즈 자신이 위조했다는 것'''까지 들통나면서, 레인즈의 도덕성은 [[도마]] 위에 올라야 했다. 그의 성적이라도 좋았다면 한큐에서 어떻게든 눈감고 무마할 수도 있었겠지만, 레인즈는 한 여름에 접어 들면서 훈련 부족에 따른 체력 저하로 인하여 타율은 2할 5푼대에 그치고 있었고 승부처에선 헛방망이질만 거듭하는 것은 물론 주특기인 도루 개수도 눈에 띄게 떨어진, 구단 전력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존재에 불과했다. 끝내 한큐는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두말 없이 레인즈를 전력 외 선수로 풀어버렸고, 레인즈는 짐을 싸서 쓸쓸하게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결국 이해 한큐는 시즌 막판 패배를 거듭하며 리그 4위에 그쳤고, 그의 영입을 주장했던 도쿠라 감독 역시 성적 부진으로 시즌 종료 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사전 조사 부족에 구단 대처도 미흡했다는 점을 오카노 구단대표도 인정 하면서도 레인즈의 해고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면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고, 레인즈의 젊은 시절 활약을 기억하던 한큐의 관계자는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팀 동료들과 친근하게 잘 지내면서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연습하던 레인즈가 왜 그렇게 망가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 라며 안타까움을 털어놓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